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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태가 봤다는 맨해튼 ‘빨간 화살표’ 어디에 …

무어. 2011. 5. 5. 18:11

[중앙일보 이철재.박성우]

정선태

'화살표 3색 신호등' 도입 과정에서 2009년 해외 시찰을 이끌었던 정선태 법제처장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 맨해튼과 독일 베를린 등 선진국의 3색 신호등을 참고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어느 거리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정 처장은 2009년 3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 법·제도단장 자격으로 경찰과 도로교통공단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해외시찰단의 단장을 맡았었다. 경찰청은 '3색 신호등은 국민을 무시한 일방적 정책'이라는 본지 보도(4월 21일자)가 나가자 "3색 신호등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통신호 체계"라며 미국 맨해튼과 독일 베를린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사진은 시찰단원들은 물론 정 처장 자신도 직접 촬영을 했다고 한다. 정 처장과의 일문일답.

 -2009년 해외시찰 때 어떤 지역의 신호등을 참고했나.

 "우리나라의 신호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선진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았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은 직접 가봤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자료를 받아봤다. 현지 전문가들과 토론도 해봤다."

 -경찰 보도자료에 나온 사진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찍은 것인가.

해외시찰단이 2009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찍었다며 국경위와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 첨부한 사진. 당시 시찰단장이었던 정선태 처장은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무슨 기준으로 이 신호등을 찍은 것인지 등에 대해 답변하지 못했다.

 "뉴욕 맨해튼 사진은 유엔 대표부가 소개한 호텔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찍었고, 베를린 사진은 베를린자유대학 공대 옥상에서 찍었다. 미국 뉴저지에선 주차타워에 올라가 찍었다."(※정 처장은 구체적인 지점을 알려줄 것을 재차 요구하는 기자에게 '지금 다시 그곳에 가도 어디서 찍었는지 말할 수 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본지가 구글 어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정 처장이 말한 지역에선 국경위·경찰이 제시한 신호등을 찾을 수 없었다. 또 맨해튼 사진에는 신호등 옆에 'onE WAY(일방통행)' 표지가 있어 오히려 맨해튼의 거리와 우리나라 교통체계가 다르다는 점만 부각됐다. 일방통행이 일반적인 맨해튼의 좌회전 신호와 쌍방통행과 '보호 좌회전'이 보편적인 우리나라의 신호등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본지 특파원에 따르면 베를린자유대학 부근에는 국경위·경찰 자료에 나온 혼잡한 거리가 없고, 오히려 한적한 편이었다.

 정 처장은 '일단 바꿔 놓고 국민이 익숙해지면 된다'는 관료 중심적인 시각도 드러냈다. 국민을 엉터리 글로벌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그는 "우리도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안다. 기본적인 틀은 이번 정부 내에서 완성하는 게 목표이며, 제도가 정착되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신호는 익숙해진 체계에 대한 안전성이 최우선이란 점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이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정 처장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다른 국무위원들이 화살표 3색 신호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국경위 해외시찰을 근거로 3색 신호등의 당위성을 주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