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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주, 이러면 ‘두 번’ 죽습니다

무어. 2011. 6. 28. 07:56

4·3부터 해군기지 들어서는 강정마을까지 ▶ 끝나지 않은 세월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지질공원 지정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을 이룬 섬. 제주입니다. 가히 자연환경의 보물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문 대할망이 수수범벅을 먹고 똥을 싼 것이 오름이 되고, 오줌을 싼 것이 내가 되어 만들어졌다는 제주도. 그러나 현실은 신화만큼 재미있지 않습니다.

유네스코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인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멸종 위기 동물이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422호로 지정된 자연생태 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강정마을이 지금 잠 못 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총 사업비 8천억 원을 투입해 16만 평의 땅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세계에 알린다며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정체도 불분명한 세계 제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독려하면서 정작 뒤로는 대표적인 자연경관 지역인 강정마을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도 끝 바다 한 가운데에 한 점 산으로 솟은 운명 때문일까요? 제주는 시난고난한 역사를 온 몸으로 증언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3만 여명의 제주도민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4·3 항쟁’은 특별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넘도록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지 못한 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세월’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풀 한 포기와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건들지 말아야 할 제주에 건설하는 해군기지는 그 비극의 세월을 재현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63년 전의 미군정이 이지스함으로 바뀌고, 이승만 정부가 이명박 정부로 바뀌고, 한라산 오름이 가정마을로 뒤바뀌었을 뿐 별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평화와 인권의 제주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4·3을 처음 극영화로 옮긴 <끝나지 않은 세월>(2005년 개봉)을 통해 오늘의 제주를 조명해 봅니다.

두 노인의 기억이 맞닿는 곳 1948년 4월 3일

2003년 10월 15일 제주도. 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노인 황가(고동원)와 변두리 낡은 집에서 살고 있는 형민(양영호)이 같은 시간에 참여정부의 4·3 진상보고서 확정 뉴스를 TV로 보며 역사의 굴곡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형민과 황가 모두 토벌대 등에 의해 부모와 형제, 아내를 잃었지만 그들의 회상이 닿는 지점은 전혀 다릅니다.

형민이 4·3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데는 형 형석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특히 어머니가 형을 죽인 서북청년단원과 재혼하면서 4·3은 그의 인생을 무겁게 짓눌어 왔습니다. 그가 4·3 희생자 신고조차 못한 채 속앓이를 해 온 것도 여기에 연유합니다. 반면 황가는 변절자에 살인자라는 번뇌에 괴로워하면서도 치부를 한 노인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형민이 불알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옆 자리의 황가와 통성명을 한 후 합석합니다. 조각조각 흩어졌던 4·3의 잔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팽팽했던 기억이 툭, 끊어지고 맙니다. 형민의 아버지 김석규의 이름이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황가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어지며 쓰러지다 머리가 탁상 모서리에 부딪치며 검붉은 피가 흐릅니다. 그리고 그 피는 형민에게서 가장 참혹했던 기억들을 한꺼번에 되살리고 그 역시 무너지듯 혼절합니다. 

이윽고 카메라는 해방 후 제주를 비추며 형민과 황가의 기억을 차례로 뒤쫓습니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에서 형민과 친구들은 바닷가로 산으로 쏘다닙니다. 어른들은 자치행정기구인 인민위원회를 설립해 1947년 3.1절 대회를 평화적으로 치르지만 미군정은 귀가하는 주민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해 6명이 피살됩니다. 이는 4·3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인민위원회는 즉각적인 총파업을 단행하고 미군정은 서북청년단과 경찰을 투입해 대대적인 검속에 나섭니다.

형석이 삐라를 돌리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어 산으로 도피하고 아버지도 동네 어른들과 함께 입산해 무장대원이 됩니다. 산속 동굴 생활도 잠시 경찰의 소탕작전으로 형석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학살을 당합니다. 이후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란 형민은 어머니와 재회하지만 형을 살리기 위해 서북청년단원과 재혼한 어머니의 사정을 모른 채 마음의 문을 단단히 잠가버립니다.

황가의 삶 역시 지극히 평화롭습니다. 이른 아침 농기구를 들고 밭농사를 지으면 아내는 3살 박이를 등에 업고 점심을 나르고 병든 부모를 모십니다. 그러나 토벌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학살을 자행하고 홀로 살아남은 황가는 산으로 올라갑니다. 무장대원으로 경찰서 습격에 나선 황가는 위기일발에 처하지만 석규의 기지로 목숨을 구합니다. 이후 토벌대의 추격이 강화되자 무장대장 이덕구는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2인1조로 하산하도록 지시합니다. 하산하던 황가는 귀순 삐라를 보고 석규를 돌로 쳐 죽인 뒤 경찰에 투신해 토벌작전에 앞장섭니다.

이렇게 영화는 두 노인의 회상을 따라 1948년과 현재를 넘나들며 광기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하지만 잔혹한 기억은 끝을 맺지 못하고 중간 중간 끊어집니다. 대신 영화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당시의 사진을 올리면서 1948년 4월 3일 밤 1시 제주 전역의 오름에서 일제히 봉화가 오르고,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유일하게 제주도에서 무산되고,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삼광삼진작전’으로 130여개 중산간 마을과 절경지들이 초토화되고만, 그 날의 진실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찬찬히 이야기 합니다.

평화와 인권의 4·3 정신 부정하는 제주 해군기지

그 제주에 올레길에 이어 ‘4·3 길’이 열립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평화와 인권을 촘촘히 수놓게 되면서 비로소 제주는 해원상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병원에서 정신을 되찾은 형민과 황가가 그해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TV로 보며 회한에 잠기는 것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형민이 어머니와 함께 4·3 위령제를 찾아 분향하고 화해하니까요. 

그러나 영화의 끝맺음은 4·3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세월’임을 지적합니다. 같은 시간 황가가 50년 전 경찰복장 차림의 자신의 사진을 보고, 곁의 손녀가 사진을 가리키며 제주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지만 그는 창밖 눈 덮인 한라산을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이 엔딩 장면은 4·3 위령제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과 4·3 항쟁을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모반폭동이라고 말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나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국방부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법 제정에 따른 진상조사보고서와 노 대통령의 공식 사과로 규정된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탄압’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역사와 평화가 공존해야 할 제주를 밀어내고 들어서는 해군기지는 제주의 공동체와 4·3의 정신을 서슴없이 부정하는 듯이 보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으로부터 시작된 4·3의 정신 즉, 평화와 인권의 정신으로 부활해 영원히 살아 숨 쉬고자 했던 제주를 전복하려는 짓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4·3이 현재 진행형의 역사임을 스크린 가득 채웁니다.  

제주 말에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살아진다”라는 뜻의 이 말에는 4·3으로 가족을 잃은 제주 여인들의 한과 원이 맺혀 있습니다. 또한 그 말은 모슬포 송악산 아래 ‘백할아버지한무덤’처럼 지금도 한날 한 시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제주 사람들의 깊디깊은 심사와 함께 끝나지 않은 세월의 무심함을 토로합니다.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과의 작은 연대를 위하여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제주도를 관광지로만 생각하지 말고 해군기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호소는 일찍이 리영희 선생이 강조했던 미국의 중장기 세계전략을 되짚게 합니다. 선생은 누차 미국이 대 중국 포위압박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한국을 깊숙이 끌고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었습니다. 초점은 중국이었던 것입니다. 

선생의 이같은 예견은 미국과 이명박 정부의 제주 해군기지로 가시화되었습니다. 일본 헤노코에 건설하려던 신기지가 ‘생명을 지키는 모임’ 등을 중심으로 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저항으로 무산되자 제주에 이지스함과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있는 해군기지를 건설키로 한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평화단체들이 강정마을에 연대를 표한 것도 미 해군력의 60%가 아태지역에 집중된 마당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은 풀섶을 이고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제주가 참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입니다.  

국가안보라는 명목아래 건설되고 있는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한반도의 공존과 주권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배치되는 것만큼 위험한 시뮬레이션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4·3의 영혼을 보듬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의 공간이자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제주에게 해군기지는 그 존재 조건을 말살하는 것에 진배없습니다.

옛부터 제주에서는 민초와 섬을 지키기 위해 하늘을 찌르는 대의명분으로 목숨을 바친 이들을 일컬어 ‘장두’라고 칭송했습니다. 이제 역사가 현실의 나침반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4·3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강정마을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만들기 위해 나선 사람들(http://cafe.daum.net/peacekj)과 작은 연대를 한다면, 우리는 그를 일러 ‘현대판 장두’라고 부를 것입니다. 4·3의 진실을 오롯이 지킨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에 이어 나직이 불러보는 노찾사의 ‘잠들지 않는 남도’는 바로 그들 장두를 향한 송가였습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잠들지 않는 남도’ 중에서)

※ <끝나지 않은 세월>을 연출하고 그 해 2005년 12월 2일 영면한 고 김경률 감독의 명복을 다시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