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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리복코리아 마케팅 담당 이사가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토닝화 '이지톤'을 들고 있다. 이 이사는 남성용 이지톤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조문규 기자]

스스로를 '문제아'라고 당당히 소개한 마케터가 있다. 이나영(39) 리복코리아 마케팅 담당 이사다. 그는 "리복 글로벌 본사에서 뜯어말린 서비스를 한국에서 론칭해 '고집불통'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며 "시장에서 통한다고 확신하면 밀어붙여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리복코리아에서 '세계 최초'란 별명이 붙었다. 그가 주도해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서비스가 그만큼 많아서다. 지난해 5월 선보인 남성용 토닝화(기능성 운동화) '이지톤'이 대표적이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컨셉트를 내세워 인기를 끈 여성용 이지톤을 남성용으로도 출시하자고 본사에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심지어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 자꾸 딴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단 출시한 뒤 반응이 시원찮으면 그때 책임지겠다"고 맞받아쳤다.

　출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장에 내놓는 족족 매진됐다. 올 상반기까지 120만 개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0배 늘어난 실적이다. 그는 "남성 소비자가 원했기 때문에 출시했고, 그래서 인기를 끈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용 토닝화는 일본·중국·싱가포르 매장에서도 출시됐다.

　본사 지시도 그대로 따른 적이 없다고 했다. 토닝화를 처음 홍보할 때도 그랬다. 본사로부터 내려온 홍보 컨셉트는 신발을 신으면 엉덩이를 맵시 있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의 '힙 업' 슈즈.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힙 업은 서양에서나 통하지, 동양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본사에 "한국 시장은 보수적이라 엉덩이는 안 먹힌다"며 "각선미를 만드는 데 효과가 있다고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본사를 설득하기 위해 경희대 스포츠의학과 연구팀과 손잡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보고서까지 첨부했다. 결국 한국에서 토닝화는 '각선미 기능화'로 소개됐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지난달 초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리복-크로스핏 서울 박스'도 그의 작품이다.

　피트니스센터와 매장을 결합한 것이다. 리복 본사에선 처음 시도한 서비스다. 그는 "미국에서 매장을 둘러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시도하는 경쟁사와 달리 피트니스에 집중하는 리복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9월 미국·캐나다에서도 론칭한다.

　디자이너와 '콜래보레이션'(협업)한 것도 한국이 최초다. 2008년 4월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씨와 손잡고 '엑소핏 바이 준지'란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압구정동 매장에서 한정 판매한 이 제품은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3000개가 '완판'됐다.

　이 이사는 "수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집은 고집으로 끝날 뿐"이라고 했다. 한국은 직텍·이지톤 등 제품이 매장 수 기준 글로벌 판매율 1위를 달리는 '효자'다. 매출 실적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결국은 '매출이 인격'"이라며 "회사 그만두고 싶느냐고 다그치던 본사에서도 실적이 좋으니 잠잠하더라"고 털어놨다.

　'나라면 과연 이 제품을 살까'. 그가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하는 생각이다. 그는 소비자의 반응을 듣기 위해 틈날 때마다 매장을 찾는다.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디자이너부터 동성애자까지 가리지 않고 만난다. 그는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킨 제품은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며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을 세계로 널리 퍼뜨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문제아'는 글로벌 마케터로 거듭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