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 홀몸노인 약 못먹어 거리에 쓰러져"
우리도 선진국의 '사례 관리 시스템' 도입 시급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홀몸노인이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홀로 앓다 숨지고도 한참 후에 발견되는 이른바 '고독사(孤獨死)'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홀몸노인들은 평균 2개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지만,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데다 이웃과도 교제가 없어 응급상황이 와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지난 3월 부산에서는 심혈관 질환을 앓던 60대 할아버지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되는가 하면 지난해 5월 청주에서는 병원 출입이 잦았던 80대 할머니가 사망 다섯 달 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사회복지사들에 의해 발견되는 노인들의 고독사 사례는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전국 60세 이상 노인 1만5천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홀몸노인의 질병 보유율은 88.3%로 전체 노인 평균 82.2%보다 높았다.
의사가 진단한 질병 수에 있어서도 배우자와 사는 노인은 1.8개, 자녀와 사는 노인은 1.9개였지만 홀몸노인은 이보다 평균 2.3개에 달했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병인 관절염 유병률을 보면 노인 평균 유병률은 27.4%인데 비해 홀몸노인은 39.7%로 조사됐고,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홀몸노인도 노인 평균 30.1%보다 많은 39.2%였다.
영양관리의 측면에서도 '식비가 부족하다'는 홀몸노인은 40.8%로, 배우자와 사는 노인 18.8%,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18.5%에 비해 훨씬 많았다.
결국 궁핍한 생활 속에 돌보는 사람도 없다 보니 지병을 앓던 홀몸노인들은 숨지고 나서도 주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약도 못 먹고 쓰러지는 홀몸노인들
문제는 홀몸노인들이 돈이 없어 약도 먹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단칸방에 홀로 세들어 사는 지명호(73.가명) 할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병, 요통을 앓고 있지만 약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한 달에 5만원 가량인 약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의 한 재개발지역에 사는 지 할아버지의 월 소득은 34만원.
기초노령연금 8만8천원과 공공근로 임금 20만원, 폐지를 주워 판 돈 5만원 등 이 전부다.
여기에서 세금 12만원과 부식비 20만원 등 32만원을 빼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면 무상으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어 지난 4년 동안 심사를 신청했지만 계속 탈락했다.
26년 전에 가출해 지금까지 연락 한번 되지 않는 아내와 아들이 호적에 그대로 남아있는 게 문제였다.
지 할아버지는 한때는 잘나가던 공무원이었으며 성공한 사업가였다.
고교 졸업 후 총무처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할아버지는 이후 맥주공장을 인수했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족과 헤어졌고, 친지와 형제들과도 왕래가 완전히 끊겼다.
병원비를 벌어 보려고 경비직에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65세가 넘는 사람은 채용하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보건소에 보여주며 "약만 좀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포기했다.
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 보니 쓰러지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주에도 공공근로에 나가 쓰레기를 줍다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주변 동료에게 발견됐지만,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 드러누웠다.
전세 1천500만 원짜리 집은 너무 낡아 비가 새지만 주인은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면 언제 헐릴지 모른다며 수리를 해주지 않고 있다.
지씨는 "남들 한 달 용돈도 되지 않는 돈으로 살면서 약도 못 먹으니 이렇게 살면 뭐하겠느냐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홀몸노인 통합 관리하는 '사례 관리자' 필요
이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홀몸노인들의 고독사를 막고 질병치료와 신체활동을 돕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중구난방'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 노인의 질병치료, 정신건강 관리, 요양 문제, 안전 문제, 빈곤 문제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노인병원과 보건소는 질병 관리에 신경 쓰고, 복지관은 안전 확인에 주력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요양만 책임지고, 구청은 경제적인 위기가 닥칠 때만 개입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사례 관리자(case manager)'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사례 관리자란 복지 대상자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서비스와 연결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충주대 노인보건복지학과 김현숙 교수는 "노인의 건강 문제는 경제, 심리적인 문제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날그날에 따라 우선으로 요구되는 복지 서비스가 다를 수 있다"며 "한 사례에 대해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과 조직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조추용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지금은 각 기관이 한 노인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있어 대상자가 어떤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서로 알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사례 관리자가 대상자의 가정형편과 고민, 필요한 서비스 내용 등 모든 정보를 관리하면서 만족도를 평가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채워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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