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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접속’하다

무어. 2011. 7. 20. 17:12

ㆍ한국사회 심화된 위기구조에 대한 공감이 '희망버스'로 나타나

"촛불집회에조차 참여할 수 없고, 삶이 버거워 촛불에조차 관심이 없는 거대한 사각지대가 공존하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희망버스 참가자 1만여명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문화제를 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009년 '촛불과 한국사회 중산층의 자화상'이라는 글에서 밝힌 생각이다. 상당수 지식인들은 2008년 촛불집회를 시민사회의 새로운 잠재적 역량이 표출된 획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였지만, 은 연구위원이 보기에 촛불집회는 '시민사회'의 계급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애초 촛불집회의 도화선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였지만, 집회 규모가 커지면서 시민들의 요구는 교육·언론·의료·대운하·민영화 등의 문제로 확장됐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표현을 빌리면, 시민들은 "기업·고용·임금 등의 경제 영역 외부의 삶의 영역, 예를 들어 건강·식품·교육·지식·언론 등의 부문에서 급격한 시장화와 상품화가 진행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촛불'은 당시 이랜드 사업장과 기륭전자 사업장 등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비정규직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08년 촛불집회 '노동문제'는 빠져


당시 이랜드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소장은 2008년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에 쓴 글에서 서운함을 드러냈다. "촛불은 끝내 홈에버 매장으로 오지 않았다. …쇠고기 수입반대에는 그렇게 열정적인 시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의외로 차가웠다." 시민들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공공영역 시장화 추진 시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밤마다 거리로 나와 정권 퇴진을 외쳤지만, 유독 노동의 문제만은 거기서 배제됐던 것이다.

2011년 여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불어온 '소금꽃' 바람을 타고 '촛불'이 '노동'과 접속했다. 지난 7월 9일 밤, 전국에서 출발한 1만여명의 시민들이 '2차 희망버스' 195대에 나눠타고 부산역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서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85호 크레인에서 6개월 넘게 고공시위를 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누구도 그곳으로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부산으로 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영도조선소까지 스스럼없이 걸었다. 시민들은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회'를 외쳤다. 조선소 입구에서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사용했다.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밤새 자리를 지켰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다. 이남신 소장은 "2008년에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호소하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이번에 희망버스를 탄 시민들은 1박2일 동안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완강하게 싸웠다"며 "촛불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은수미 연구위원도 "2008년보다는 시민들이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다. 시민들이 노동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기며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오랫동안 분리돼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은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제도개혁과 입법개혁 문제를 파고들었고, 노동운동은 민주노총 등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건설과 임금조건 및 노동조건 개선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전문화 경향을 띠며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상실했다. 노동운동은 대기업 사업장 정규직 노조가 투쟁의 중심이 되면서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응력이 약화됐다. 촛불집회 당시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노동 문제가 촛불집회의 의제가 되지 못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한편, 시민운동이 촛불집회를 통해 새로운 갱신의 계기를 얻었던 데 반해 노동운동은 촛불집회의 중심의제에서 밀려나면서 시민들의 관심에서 소외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른 길을 걸어온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간극이 좁혀지고 시민들이 노동문제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이 2011년 여름에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연구자들은 '한국사회의 심화된 위기구조가 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의 말이다.

"촛불집회의 중심 어젠다는 먹을거리와 환경 문제 등 생활정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장구조가 매우 가혹하게 작동하면서 이제는 노동영역을 포괄하는 생존의 문제로 중심이 이동했다. 사회가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통하는 시절로 바뀌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공감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 희망버스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 생존의 문제로 중심 이동


이남신 소장은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투쟁,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잇따른 자살,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면서 시민들이 노동 문제를 자신들의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봤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노동계 안에서도 양극화가 이뤄지면서 시민들은 그동안 노동운동에 대해 귀족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처럼 대공장 노동자들도 고용주의 의지에 따라 한순간에 사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보고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저항선을 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봤다.

김진숙이라는 상징적 아이콘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남신 소장은 "50대 여성이 동료들을 지키겠다는 진정성 하나로 6개월 넘게 크레인 위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진숙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희망버스의 불이 붙을 수 있었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몇 년 사이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되면서 시민들이 느껴왔던 위기의식이 김진숙이라는 상징적 개인의 투쟁을 폭약으로 삼아 희망버스라는 폭죽을 쏘아올렸다는 얘기다.

희망버스는 2008년 촛불집회의 연장선에 있다. 촛불집회의 특성으로 꼽혔던 것들이 희망버스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의 성별·지위·연령이 다양하고 참가자들은 조직적 동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별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참가자들의 다양성과 기동성은 더욱 커졌다. 성소수자, 장애인, 직장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광범위하게 결합했다. 촛불집회 당시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공론장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여론 형성의 신속성과 확산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일부 논자들이 촛불집회의 한계로 지적했던 노동이슈가 이번에는 전면에 부각됐다. 희망버스가 '촛불의 진화'라고 볼 수 있는 근거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진화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퇴행의 증거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의 지적처럼 희망버스는 우리 사회가 3년 전보다 더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음을 방증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대엽 교수는 "현재의 위기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정치권과 언론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전 사회적 차원의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