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배소진기자][[출동! 사건팀]턱없이 모자라는 화장시설에 마음 편치않은 '저승가는 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이하 승화원·벽제화장장)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장시설 중 하나다. 경기도에 있지만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 16일 승화원에서는 화장로 총 23기 중 수리 중이거나 비상용인 3기를 제외한 20기가 하루에 5번씩 총 100구의 시신 화장에 사용되고 있었다. 하루 중 마지막 화장은 사산아와 개장유골 전용이다. 이를 제외하면 90여구의 시신이 매일 이곳을 거치고 있었다.
◇100만원 내고 다른 지역 '원정 화장'
예약도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시민들은 경기도 벽제화장장까지 이동하면서도 평균 20% 정도는 제 때 예약을 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장례식장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며 4일장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화장장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해 10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e하늘 장사종합정보시스템' 에서는 16일 오후 3시이지만, 이틀 뒤인 18일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
4일장 치르기를 꺼리는 유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지역 화장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상당한 거리와 비용이 요구된다.
승화원측은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110구 정도의 화장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시민만 대상으로 한다 해도, 하루 20여구는 승화원이 아닌 인천·경기 등 인근 화장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성남시 영생사업관리소는 이용객의 70% 이상이 서울시민이다. 2010년 한 해 동안 1만3000여구가 화장됐다. 이 중 9000여구가 서울시민으로 집계됐다. 수원시연화장도 하루 12%가량은 서울시민의 화장으로 채워진다.
서울시민이 승화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성인기준으로 9만원. 하지만 수원이나 성남시의 시설 이용에는 '승화원 정가'의 11배가 넘는 1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예약하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다.
◇밀려드는 시신에 기계도 사람도 성할 날 없어
시신 화장에는 약 80분이 걸린다. 화장이 끝난 후 화장로를 식히고 유골을 모아 분쇄하는 과정까지 더하면 2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20기의 화장로를 한꺼번에 운영하면 일손이 달린다. 유족대기실이 혼잡을 빚는다. 때문에 승화원은 2개 조로 나눠 10기씩 1시간 단위로 가동한다. 오전 7시에 첫 10기 화장로 전원을 켜면 8시에 나머지 10기를 가동하는 식이다.
화장로 운전기사는 모두 15명. 그러나 365일 운영되는 승화원 특성상 휴무조와 근무조로 나눠 실제로는 9명이 근무한다.
1시간 단위로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무시간에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려다 보면 제대로 식지도 않은 화장로에서 유골을 수습하기 일쑤. 기사들의 팔다리는 데인 상처로 성할 날이 없다. 쉬는 시간 없이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뜨거운 불길만 쐬다보면 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화장로 고장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내부에 900도~1000도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만큼 고장이 잦고 기계에 무리가 많다. 일본처럼 화장 문화가 보편화된 나라에서는 화장로의 하루 사용을 2~3회 내외로 조절한다.
성남시연화장에서는 기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하루 3회차만 운영한다. 하지만 서울승화원은 아예 공학박사들에게 의뢰해 기계를 5회차까지 안전하게 가동할 수 있도록 손봤다. 한계치 5회를 꼬박 채우지 않으면 밀려드는 화장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장시설 증설은 왜 안될까
화장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년전인 1991년 17%에 그치던 화장 비율은 2005년 50%를 넘었다. 2009년에는 65%까지 늘어났다. 매장 중심의 장사문화가 화장으로 변화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설은 역부족이다. 최근 10년 간 화장률이 2배 늘어나는 동안 화장시설은 14% 증가에 머물렀다.
화장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승화원 관계자는 "화장로를 1기만 더 늘리려 해도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인근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한다"며 "화장로 증설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2월에는 승화원 입구에 '화장터는 불을 꺼라' '당장 화장터를 폐쇄해라' 등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들이 땅값 하락을 우려한 이유 때문이다.
요즘 승화원의 근심은 2015년 입주를 시작하는 인근 대형 아파트단지다. 최대 8만명 정도의 입주민이 들어올 예정이다. 입주예정자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이전을 요구할까 전전긍긍이다.
'화장터가 있는 줄 모르고 입주했다'는 주민들의 불만을 우려한 승화원 직원들이 모델하우스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팜플렛에 이 사실이 명시돼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도 감지된다. 이미 화장장이 지역 필수시설로 자리잡은 만큼 주민들에게 '납득할만한 이득'이 돌아간다면 수용하겠다는 인식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실제 고양·파주 주민들은 승화원 이용시 서울시민과 똑같은 혜택을 누린다. 오전시간대 화장로를 우선 예약할 수 있다. 가격도 9만원으로 서울시민과 동일하다. 수십만원을 들여 화장장을 승화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인근 의정부 지역 주민들은 '우리에게도 혜택을 달라'는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승화원에 따르면 고양시 일부 주민들은 최근 "화장로를 반지하 건물로 옮겨 추모공원의 비중을 늘리고, 화장로 중 2~3기를 고양시 거주자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면 화장로를 신설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화장장이라면 무조건 반대했던 이전과 달리 타당한 요구를 하며 공존할 방법을 찾는 셈이다.
승화원 관계자는 "조금이나마 성숙한 시민의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앞으로 화장문화가 더욱 보편화된다면 화장시설을 기피하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초 완공예정인 원지동 추모공원에 기대
서울시립승화원은 2012년 3월 완공되는 서울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시내에 세워지는 첫 화장시설인 원지동 추모공원은 화장로도 11기 규모로 예정돼 있다. 완공되면 승화원의 업무과중이 일정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경기도 용인시와 가평군에도 내년 중 화장시설이 문을 열 계획이다.
정부는 최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택지개발 등에 따른 개장유골을 현지에서 직접 화장할 수 있는 이동형 화장로 보급 등을 중심으로 하는 장사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매일 각 화장장의 마지막 회차가 개장유골·사산아 전용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개장유골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화장로 확보에도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또 정부는 지자체별 사망자 수와 화장수요, 시설현황 등을 검토해 수도권 등에 화장시설을 늘리고 화장장이 없는 인근 지역간 공동 화장장 설치를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유족을 남겨두고 '저승가는 마음'이 편치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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