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인천시 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대안위탁 교육기관'을 지정했다. 이곳에서는 임신으로 인해 학교로부터 자퇴를 종용받거나 스스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10대 소녀들이 합숙을 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니던 학교에 출석한 것과 동일하게 인정받으며 퇴소 후 다니던 학교에 복학할 수도 있다.
핫이슈, 학습권 보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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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수 있는 권리, 자모원
인천 자모원에는 30여 명의 미혼모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10대 미혼모들이다. 자모원은 최우선으로 학생 미혼모의 입소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인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 어디서든 입소신청서를 받고 있다. 입소에 대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단지 사실혼 상태가 불가한 미혼모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10대 미혼모들은 자모원에서 최장 1년 6개월 동안 숙식을 하며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인천교육청 관내 학생은 입소를 의뢰하고 본인, 보호자 그리고 학교장(시설장)과 함께 대안교육 위탁교육신청서를 제출한다. 타 지역의 학생들은 학교 관할 교육청을 경유해 신청서를 제출해야 입학할 수 있다.
자모원이 운영하고 있는 '바다의 별'의 수업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루어지는데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일반 학과과목 수업을 듣는다. 열여덟 명의 선생님과 일대일에 가까운 수업을 받는다. 인천시 교육청의 지원으로 인터넷 동영상 강의인 '잎새방송'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또 틈틈이 태교, 생명교육, 금연교육 등 인성과목 수업을 듣는다. 금요일 1시에는 피아노 레슨이 있고 2주에 한 번씩 꽃꽂이 강의도 받는다. 선생님은 자원봉사자들이며 모든 예산은 자모원이 자체 부담하고 있다.
대안학교로 지정됐지만 정부 예산 지원이 없어 인천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설이나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건물 관리비를 내는 것조차 빠듯한 지경이다. 종교단체(가톨릭)지만 교구 아래에는 워낙 많은 단체들이 있어 종교단체의 보조금을 받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미혼모들이나 갓 태어난 아이들이 위급 상황에 처했을 때 발이 되어주는 자동차는 무려 17년이나 된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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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원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운영하는 신지영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안일한 성교육과 인성교육이 부족한 학습 위주의 교육을 질타했다.
"성을 쓰되 임신만 하지 말라는 '피임교육'을 강조하는 건 분명 잘못됐어요. 아이들에게 암묵적으로 성은 쓰라고 전제돼 있는 거니까요. 또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해요. 임신시킨 당사자인 남학생들이 학교에서 처벌을 받은 적은 단 한 건도 없어요. 오롯이 여학생들만 피해를 입죠."
어느 30대 남자가 열네 살 여중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학교도, 집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강제동거한 경우가 있었다. 아직 남녀관계 설정에 미숙했던 여자아이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야말로 범죄며 인신매매였다. 결국 아이는 임신을 했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자모원에 입소했다.
"아이는 처음에 남자와 헤어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러나 여기서 생활하며 교육을 받아보니 남자가 자신을 성적인 도구로만 여겼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동안 자기가 살았던 삶이 곧 지옥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남자가 몇차례 시설에 찾아오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를 보호하고 만나지 못하게 하니 칼을 들고 들어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남자를 고소할 생각도 했지만 아이 아버지라는 이유로 여자 쪽에서 처벌을 원치 않았어요. 남자에게 태어날 아이와 여자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정리했죠."
아직도 일선에서 임신한 여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신 원장은 생명을 지키며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시험기간에는 해당 학교에서 밀봉해온 시험지를 아이들에게 풀게 해요. 시간이나 상황을 일선 학교와 똑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보게 하죠. 그리고 다시 밀봉해 학교로 보내요. 그런데 유독 학생이 직접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교가 있어요. 학생을 전라도까지 오게 하라는 곳도 있었죠. 만삭의 몸으로 시험을 보기 위해 보호자를 대동하고 그곳까지 갔다 왔어요."
원리원칙도 중요하지만 작은 배려는 아이들에게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09년 초 인권위원회는 학교가 임신한 학생을 퇴학시키거나 자퇴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학교 측에 권고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교는 아직까지 임신한 학생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학교 다니는 것을 매우 꺼린다.
"몇몇 학교의 선생님들이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자퇴를 권유하러 오기도 해요. 그런 건 저희가 강력하게 막아요."
임신한 상태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그러나 신 원장은 그런 모습이 일반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나 모델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경각심을 일깨워줄 거라 생각한다.
미혼모를 상대로 출석일수를 인정해주는 대안학교를 꾸려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모든 학생을 수용하기에는 시설이나 지원금이 부족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놓을 것이다. 절망에 휩싸여 들어온 아이들이 몇 개월 후에 밝게 달라져서 퇴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이 난다. 아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보람된 일이다.
그래도 희망을 품은 아이들
현재 자모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순영이(18세, 가명)와 경미(18세, 가명)를 만났다. 두 사람은 교제하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겨 자모원의 문을 두드렸다. 순영이는 자신이 직접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왔고 경미는 다른 기관의 소개로 들어오게 됐다. 수업이 많은 날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둘 다 내년 3월 출산 예정이다.
"임신을 하니 잠이 늘었어요. 수업시간 외에는 피곤해서 거의 잠을 자요."
시설에 입소해 좋은 점은 마음 놓고 태교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 다 주변의 낙태 강요에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당시 학생 신분임에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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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번도 낙태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미)
두려움은 없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 앳된 모습이지만 마음은 이미 강인한 엄마다.
"자모원에 들어오지 못했으면 아이와 저 둘 다 죽었을 거예요. 갈 곳도 없고…. 여러모로 힘들었어요. 자살을 했을지도 몰라요."
순영이는 유아교육과에 진학해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다. 경미는 건축설계사가 되어 나만의 예쁜 집을 짓고 싶다.
생명의 영역은 신성불가침이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그 누구도 생명을 낙태시킬 권리는 없다. 아이에게는 태어날 권리밖에 없다. 무엇보다 어린 생명들이 불행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이 충분히 정립돼야 할 때다. 또 일선 학교에서는 학습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성교육, 생명교육으로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좀 더 폭넓은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자모원의 변석찬·이혜원 부부 교사 Mini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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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계기로 자원봉사를 나섰나요?
변석찬 늘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품고 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지요. 막연히 '내가 받은 것을 나이 먹기 전에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2, 3일 후에도 연락이 없어 조급한 마음에 "내가 잘린 거냐?", "자격이 없어서 그런 거냐?"며 전화를 걸어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했죠.
이혜원 50년간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까 이제 남을 위해 살자고 서로 약속했어요. 돈 받고 가르칠 때보다 기쁨이 훨씬 커요. 도와주는 기쁨이 크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Q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변석찬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눠서 가르치고 있어요. 일단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려고 노력해요. '지식을 얻었다'라고 생각하게끔 용어 설명을 위주로 진행합니다. 정규교육과는 격리됐던 친구들이 많아 학교와 같은 수업은 불가능하지만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도 무리 없을 만큼 기초 수준을 닦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이혜원 학생들이 가끔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그건 바로 동기부여가 된 거죠.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고요.
Q 일반 학생들과 다른 점은 없나요?
이혜원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 선입견이 있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다르겠지…. 그런데 밖에서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정말 순수해요. 학교에 적응을 못했던 것뿐이죠. 무척 해맑은 아이들입니다.
Q 선생님들께는 마음을 터놓는 편인가요?
변석찬 편안하고 통한다는 생각이 들면 대화를 하기 시작해요. 과학 선생님인 제게 "제가 양수가 부족하다는데 물을 많이 먹어야 하나요?" 이런 질문도 하고요. 가정 과목 시험을 선택하면서 "가정에는 태아에 대해 많이 나오니까 우리가 유리하지 않을까요?"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Q수업 외적으로 조언도 해주시는 모양이군요?
이혜원 주로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요. 기죽지 말고 과거는 접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라고요. 아이가 없어서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도 많다고 위로 아닌 위로도 건네죠.
Q 아이들의 눈에서 희망이 보이나요?
변석찬 그럼요. 다행히 아이들의 꿈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에요. 한마디로 살 궁리를 하고 있어요. '네일 아트를 하겠다', '피부관리사가 되겠다' 등 마치 어른처럼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다들 대학은 꼭 가고 싶어 해요. 여건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봐서라도 가겠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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