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얘기 =====/아름다운사회(미담)

"사랑으로 일하면 기쁨이 마음에 들어와요"

무어. 2011. 5. 1. 17:16

'한센인들의 엄마' 엠마 프라이징거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2년간 봉사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벌써 50년이 지났네요. 봉사하며 살고 싶었는데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어요."

30일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한티순교성지'에서는 한국의 한센인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한센인들의 엄마' 엠마 프라이징거(79) 릴리회 명예회장의 팔순을 축하하는 기념 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는 대구대교구 교구장인 조환길 대주교가 집전했으며 한센인 900여 명이 엠마 회장의 팔순을 축하했다.

엠마 회장은 앞서 29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에 너무너무 잘 왔고, 너무 행복했어요"라면서 "주님께서 제 삶을 행복하게 이뤄주셨어요"라고 말했다.

1932년 오스트리아 엡스 티롤에서 태어난 엠마 회장이 한국에 온 것은 스물아홉 살이던 1961년이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간호사였던 그녀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다 그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선종한 다미안 신부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에티오피아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친구를 통해 한국에 있던 외국신부님을 알게 됐고, 그 신부님의 소개로 대구대교구 교구장이던 서정길 대주교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올 수 있었어요."

처음엔 2년 동안만 봉사할 계획이었지만 한센인 마을을 방문한 첫날 한센인들과 평생 함께하기로 마음 먹었다.

"1961년 4월 24일 한국에 와서 4개월 뒤인 8월 초에 한센인들이 사는 곳에 처음 갔는데 그날 '이 일은 내가 평생 할 일이다' '하느님의 뜻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어려웠지만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고생한 것이 없어요. 주님께서 이제까지 돌봐주셨고 주님께서 돌봐주시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스물아홉 살의 꽃다운 나이에 고령 은양원, 의성 신락원 등 한센인 마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며 낯선 한국 생활을 시작했던 그녀는 평생 한국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다.

1965년 칠곡 가톨릭피부과병원을 열었으며 당시만 해도 '문둥이'로 불리며 냉대받던 한센인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나이 어린 한센병 환자도, 80세 할아버지 환자도 이런 그녀를 '엠마'라는 이름 대신 '엄마'라고 불렀다. 환자들이 지어준 한국 이름은 배복녀. 복녀는 '복되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한센병 환자들을 '마이 패밀리(my family)', '가족'이라고 불렀다.

"저도 제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센병이 완치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 보람 있었어요. 지금은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 즉시 치료받으면 몇 달 안에 나을 수 있어요."

외롭고 힘든 때는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외롭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쁜 날이 더 많았어요. 사랑으로 일하면 일이 잘 안되어도 그 기쁨이 마음에 들어와요"라고 대답했다.

1996년 병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센인 후원 단체인 릴리회 활동을 통해 한센인 치료와 구호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한국에 온 지 50년째인 그녀는 한국을 "제 삶을 이뤄준 고향"이라며 죽은 뒤에도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경북 군위에 있는 가톨릭 묘원에 묘지도 마련했다.

"오스트리아는 '태어난 고향'이고 한국은 '그냥 고향'이에요. 지금까지 함께해온 분들과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건강히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