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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세론 운명 ‘분열·연대’서 갈려…“현재 여론지지도는 거품” 본선 걱정?

무어. 2011. 7. 19. 21:48

6년 전에도 '박근혜 대세론' 논란이 있었다. 17대 대선을 2년여 앞둔 2005년 5월 한나라당 소장파 정병국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이회창도 대세론으로 나가다가 좌초했다"며 "결코 박 대표나 당을 위해서 대세론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경쟁자, 다원구조로 가는 것이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훈수'했다. 이번엔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특보는 '박근혜 대세론'을 '독약'에 비유하며 "지금 1위이기 때문에 끝까지 1등을 할 것이라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특보 역시 이회창 대세론의 실패를 거론하고 있다. 이 특보는 "박 전 대표가 이회창보다 강력한 후보인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급은 우연인가.

두 사람이 말한 이회창 대세론의 실체는 결국 '보수의 분열'로 귀착된다. 1997년 대선은 보수가 삼중분열했다. 대통령과 여당 후보는 대립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김대중 후보와 손잡았으며, 이인제는 경선에 패배하고도 다른 당을 만들어 출마해 무려 500만표를 가져갔다. 2002년 대선 역시 보수의 분열로 대세론은 좌절됐다.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끌어들이는 동안 이회창은 '3자구도'에 취해 있었다. 여론 지지도에 매달린 선거전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반면 김영삼 후보는 민정계와의 주도권 다툼에서 현직 대통령을 압박해 조기에 대세론을 인정받은 것이 주효했다. YS는 이를 통해 당의 균열을 최소로 막았다. 영남과 충청 연대로 호남을 고립시킨 전략도 대세론의 개가였다. 이명박 대세론은 이회창 후보가 출마해 보수진영이 갈라졌지만 '박근혜의 승복'으로 완승으로 귀결됐다. 여당 후보의 연대가 없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이처럼 역대 대세론의 운명은 분열과 연대에서 갈렸다.

박근혜 전 대표는 현재 지지도에서 경쟁자를 압도한다. 당내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의원이 몸집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서 대세론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뭔가. 박 전 대표가 대선 행보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김영삼 후보처럼 선제적으로 제 세력을 포섭해 선거구도를 조기에 결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매우 조심스럽다. "대선 행보를 하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갈 것이어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측근들은 설명한다. 6·3 청와대 회동으로 계파 대립은 봉합한 상태다. 보수의 분열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외생변수가 널려 있다. 영남 출신인 문재인 변호사의 부상,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제3세력의 재정비 등은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할 수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민노당 대신 충청세력과 손잡는 구도도 DJP 사례가 있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따라서 이동관 특보의 지적을 선의로 해석하면 대세론 논란은 곧 본선 걱정이다. 이 특보에 대해 친박계 서병수 의원은 "집권여당에 대한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른 측근 의원은 "이 대통령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지금 돌을 던지고 있나"라며 "권력에서 밀려난 자의 권력금단 현상"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하지만 우려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여론 지지도는 거품이며, 대세를 장악하지 못하면 대세론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