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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로 불렸던 노숙인의 죽음

무어. 2011. 2. 25. 22:08

노숙인들의 수발을 하며 살아온 40대 여성이 숨졌다. 그 역시 약간의 정신지체 증세를 보였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돌봐주던 노숙인에게 살해됐다.

25일 광주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쯤 광주 모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보호 치료를 받던 최모씨(46)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최씨는 하의가 벗겨져 있었고, 목이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설 관계자는 "어젯밤 혼자 방을 쓰고 있는 최씨가 시설에서 함께 사는 임모씨(40)와 방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보니 최씨는 숨져 있었고 임씨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임씨가 최씨를 성추행하려다 반항하자 목졸라 살해한 뒤 도주한 것으로 보고 뒤를 쫓고 있다. 숨진 최씨가 이 시설에 들어온 것은 5년 전.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생계를 이어온 그는 겨우 몸을 뻗을 수 있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생활했다.

그 스스로도 약간의 정신지체 증상을 호소해왔다. 하지만 함께 거주하는 다른 노숙인들이 전과자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대부분인 것을 알고는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최씨는 시설을 운영하는 목사 부부와 함께 다른 노숙인들의 빨래, 식사, 목욕 등을 도왔다. 노숙인들은 그를 "천사가 나타났다"며 반겼다.

노숙인 박모씨(54)는 "세상에 붙잡을 끈이 없어진 우리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을 당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그는 시설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인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고 흐느꼈다.

노숙인 20여명이 거주하는 이곳은 광주 모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인가 시설이다. 교회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하나둘 데려와 밥을 주고 재워주는 곳이다.

노숙인들은 26개동의 컨테이너 박스와 가건물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미인가 시설이다 보니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화재에도 취약했다. 2006년 11월10일 바로 이 시설에 거주하던 원생의 방화로 원생 4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남구청 관계자는 "미인가 시설은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고 대부분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 배명재·박용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