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지욱기자]가계대출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리상승기를 앞두고 800조원에 달하는 가계빚은 고물가와 소득양극화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워지고 있는 가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경기 전반에 시한폭탄으로 작용한다는 우려도 커진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서민과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증하면서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원인과 문제점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올해 초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해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계부채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힌 데에는 물가급등에 따른 금리인상과 이로 인한 이자폭탄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 3월 DTI규제 부활을 뼈대로 하는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도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잠재적 폭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나온 우려였지만,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줄이는 정책방향보다는 외려 이를 조장하거나 수수방관했다는 지적이다.
주로 부동산시장과 건설업 경기부양을 위해서였다. 결국 올해 금리상승기에 이자폭탄으로 인한 가계부실화가 물가상승과 함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 한은 "가계부채 문제 악화되지 않을 것"..금리인상 '뒷북'
지난 2008년 9월 글로벌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5.25%에서 2%까지 낮췄다.
이후 한국 경제 회복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고, 물가 상승 등의 압력이 있었지만, 한은은 16개월 내내 금리를 동결했다가 지난해 7월에야 17개월만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시켰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5.75%로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한국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환율정책 등을 통해 단계적인 출구전략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8월 한은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서는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책이 포함된 8·29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시장에서 금리 인상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했던 이유는 바로 부동산 정책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지난해 8월25일 미국 기자간담회 "DTI는 자산이 있는 계층의 담보 대출을 제한하는 조처이므로 이를 완화한다고 해서 전반적으로 가계 부채 문제가 악화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가계 부채에 대해 간과하는 입장을 보였다.
◇ 금융당국 "서민층 주택구입때 빚 내라, 괜찮다" ..대출 조장
지난 28일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위부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8·29 대책을 발표하면서 "DTI 부분을 금융권의 자율심사에 맡기면 실질적으로 고소득층보다도 저소득층의 대출한도가 많이 올라간다"며 "따라서 저소득층, 중산층, 서민층의 주택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살 때 자금대출한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거품 낀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 시켜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규제 완화로 '빚'을 더 받게 해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저소득층과 서민층 등을 대출시장으로 끌어들여 이들에게도 빚내서 집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8.29 대책 발표 당시, 정은보 금융위 금융정책국장도 "일부 저소득층에서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있어 괜찮다고 봤다"고 대답하며 금융사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도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를 더 악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자신했다.
당시 임차관은 "가계부채 구조를 살펴보면 대출 자체의 60~70%는 상환능력이 있는 고소득자의 대출 비중이 높으며 우리나라 은행 가계 대출 연체율이 0.57%로 외국에 비해서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우리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양호하다"고 확신했다.
◇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 수준..정부는 책임회피하다 뒤늦게 "문제될 것"
정작 가계부채를 폭탄급으로 늘린 것은 정부의 실책에서 비롯된 분명한 '실패'지만, 정작 책임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 지난 7일 물가와 금리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서 "할 수만 있다면 책임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이다.
오히려 이제와 집중적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면서 각종 후속조치를 내놓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 22일 3·22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가계부채의 잠재 폭발력을 간과할 수 없고,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DTI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고소득계층이 전체 가계부채의 70%를 차지한다"며 "건전성 측면에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소득층, 중산층, 서민층의 주택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살 때 자금대출한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던 권혁세 부위원장도 지난 22일에는 "DTI 규제는 가계부채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며 "중산층에서 많이 늘어 다행이지만 자영업자의 가계부채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토지주택센터장은 "원가가 있는 밀가루, 설탕 등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며 가격을 낮추라고 하는데, 집값에 대해서만 거품낀 가격은 손볼 생각을 하지 않고 DTI 등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서민 빚 부추기'에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스토마토 송지욱 기자 jeewook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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